필라멘트 건조기
출력 실패의 1순위 용의자는 프린터가 아니라 습기 먹은 필라멘트다
출력 실패의 1순위 용의자는 프린터가 아니라 습기 먹은 필라멘트다
필라멘트는 공기 중 수분을 빨아들입니다. 흡습한 필라멘트가 250℃ 안팎의 노즐을 지나면 안에 있던 수분이 순식간에 수증기로 팽창하면서 압출선을 터뜨리는데, 이게 우리가 스트링·표면 기포·언더압출·층간 접착 불량으로 보는 증상의 정체입니다. 프린터 설정을 몇 시간씩 뜯어고쳐도 안 잡히던 문제가 필라멘트를 말리자마자 사라지는 일이 흔한 것도 그래서입니다. 건조기는 이 수분을 다시 빼내는 물건입니다. 원리는 단순합니다 — 유리전이온도(무르기 시작하는 온도)보다 낮은 온도로 오래 데워서 수분만 날립니다. 중요한 건 '건조'는 회복이지 예방이 아니라는 점입니다. 말린 필라멘트를 그냥 방에 걸어두면 며칠 만에 원위치니, 건조기는 진공 보관과 짝으로 봐야 값을 합니다.
필라멘트 속 수분이 노즐에서 끓으며 압출선을 흐트러뜨립니다. 리트랙션을 아무리 만져도 안 잡히면 습기를 먼저 의심하세요.
수증기가 노즐 안에서 팽창하며 압출을 끊습니다. 툭툭 끊기는 소리나 노즐에서 튀는 소리가 함께 나기도 합니다.
기포가 낀 압출선은 아래층과 제대로 융착되지 않습니다. 습기 먹은 필라멘트로 뽑은 부품이 유난히 잘 깨지는 이유입니다.
터진 수증기가 표면에 곰보 자국을 남깁니다. 새 필라멘트인데도 이러면 유통·보관 중 흡습을 의심할 만합니다.
건조는 회복이고 진공 보관은 예방입니다. 말린 필라멘트를 그냥 두면 며칠 만에 원위치라, 이 둘은 사실상 한 세트입니다.
말릴 때가 됐는지, 보관함이 제 역할을 하는지 판단하려면 숫자가 필요합니다. 감으로는 흡습을 못 잡습니다.
PETG는 흡습이 빠른 편이고, 그 결과가 스트링·기포로 아주 눈에 띄게 나타납니다. 건조기 효과를 가장 먼저 체감하는 소재입니다.
TPU는 흡습에 특히 민감해 말려서 꺼낸 뒤 몇 시간이면 다시 먹습니다. '건조하며 출력' 기능이 사치가 아니라 필수인 쪽입니다.
PLA만 쓰고 개봉 후 빨리 소진한다면 급하지 않습니다. 하지만 PETG·TPU·나일론으로 넘어가거나, 스풀을 여러 개 쌓아두고 오래 쓰는 습관이라면 우선순위가 확 올라갑니다. 흡습은 이 사이트에서 다루는 출력 실패 원인 중에서도 가장 자주 범인으로 지목되는 축이고, 설정을 몇 시간 만지는 것보다 필라멘트를 한 번 말리는 게 빠른 경우가 많습니다.
흔히 60~70℃에서 4~6시간 정도를 시작점으로 잡습니다. 다만 이건 절대값이 아니라 출발점이고, 제조사가 권장 조건을 적어놨다면 그쪽이 우선입니다. 원칙은 하나입니다 — 소재가 무르기 시작하는 온도(유리전이온도)보다 낮게, 대신 충분히 오래. 온도를 올려 시간을 줄이려다 스풀이 눌어붙는 게 가장 흔한 사고입니다.
식품 건조기는 현실적인 대안이지만 표시 온도와 실제 내부 온도가 어긋나는 경우가 있어, 안에 온습도계를 넣고 실제 온도를 확인한 뒤 쓰는 게 안전합니다. 가정용 오븐은 권하지 않습니다. 설정 온도 주변에서 크게 오르내리는 특성 때문에 순간적으로 온도가 치솟아 스풀이 변형되거나 필라멘트가 눌어붙을 수 있고, 조리 기구에 플라스틱을 데우는 것 자체도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.
보관 방식에 전적으로 달렸습니다. 방에 그냥 걸어두면 습한 계절엔 며칠 만에 원래대로 돌아가고, 제습제를 넣은 밀폐/진공 보관함에 두면 훨씬 오래 갑니다. 그래서 건조기만 사는 건 반쪽짜리 해결입니다. '말린다'와 '유지한다'는 다른 문제이고, 유지는 보관 키트의 몫입니다.